03

 

사실 하성준은 강해준 이외 인간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누가 옆에 앉아 있던지 말던지. 어차피 나 알고 있을 거고, 호기심을 보이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셋 중 하나다. 나에 대해서 진짜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지독히 오만한 생각이었으나 슬프게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법대학에 들어온 이후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비슷한 처지의 김동식, 강해준과 함께 다녔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놈들이랑 맨날 술 마시기는 싫었다. 술을 쳐 마시게 된 계기가 그놈의 강해준 때문인데 뭔 강해준을 보면서 술을 마셔야 하는가. 그렇다고 혼자 마시자니 그건 또 싫고.

그래서 온갖 핑계를 다 삼아 술자리를 쫓아 다녔다. 일관성은 없었다. 그냥 아무데나 쫓아가서 앉아있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술만 퍼먹고 안주 축내면 또 안 불러줄 거 같아서 적당히 분위기 맞추고 웃고 놀았다. 인맥을 늘리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웃고 친해지고 하는 사이에, 어느 술자리에서도 자기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바로 그 빌어먹을 성준식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주 뻔한 수인데. 하성준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 밤. 우리 빌어먹을 성준식이. 그렇잖아. 신입생 때, 보고 반한 상대를 쫓아다니기 위해서 온갖 술자리에 스며드는 거. 용기는 안 나고, 낮에는 멀리서 지켜보다가 밤에 술자리에서는 옆에 다가와 슬며시 앉는 거.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밥 먹자 술 먹자 어 같은 반이네 우리 수업 같이 듣자 해서 어영부영 자신 패거리에 끼이게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법대학 수석으로 입학한 성준식은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던 중이었다. 잘 된 일이었다. 차라리. 이미 마법사가 되어 입학한 자신, 강해준, 김동식과 같이 다니게 된 게.

그랬지. 성준은 피식 웃었다. 지금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 빌어먹을 성준식이 자기 애인이 되고, 제일 꿍꿍이를 알 수 없던 김동식은 정의로운 공무원이 되고. 강해준은 남자와 혼인신고를 하고 애까지 입양하고. 성준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돌아누웠다. 사실 준식과 냉전 중이었다. 말이 안 되는 걸로 화를 냈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는데. 준식에게는 그게 너무도 중요한 거 같았다.

왜 넌 나한테 결혼하자고 안 하는 거냐?”

화난 얼굴로 멱살을 잡고 이야기한다. 성준은 준식의 그 표정과 말에 벙쪘다. 아니 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남자끼리 어떻게 결혼을 하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성준식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는다.

이 새끼.”

성준은 재빨리 멱살을 풀고 두 걸음 물러서서 결계를 쳤다. 준식은 3급 마법사라 마력은 적지만 잘못 건드리면 귀찮아진다. 마법사 전문 의사니까. 준식은 성준이 결계를 치고 있는 걸 인상을 쓰고 바라보았다. 이 시발놈의 새끼가 진짜. 이를 악물고 입술만 움직여서 말한다. 입은 열리지 않는다. 짓씹는 듯이 내뱉는 말. 성준은 준식이 저렇게 말하는 게 제일 싫었다. 저렇게 이야기하면 그 곱상한 얼굴이 양아치 얼굴이 된다.

, 이 글러먹은 새끼야. 그 날라리 강해준 새끼도 지 애인이랑 애인이 데리고 온 애새끼 지키겠다고 꾸역꾸역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 또 그 이야기냐. 성준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강해준이 그 미친 짓을 해 놓은 덕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잊었느냐, 성준식아.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도리도리. 상급 결계를 쳤다. 무슨 말을 해도 저 바깥에서는 들리지 않도록. 그랬더니 준식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뭘 둘러쳤는지 알겠지. 준식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입술을 바꾸지 않고 그를 응시하며 궁시렁거린다.

강해준이랑 또 비교를 하고 지랄이여.”

그 사이 준식은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야 이 거지같은 새끼야, 니가 지금 친 거 상급 결계인 거 알아! 너 또 그 안에서 궁시렁거리고 있지! 시발새끼야, 하여간 니 자식이 그러니까 그따위로 사는 거야, ? 이 거지같은 새끼가! 성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그를 응시했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가까스로 참는다. 정치판 할저씨들보다 저 인간 하나 비위 맞춰주는 게 더 힘들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결계막으로 마력으로 만든 화살이 다다닥 날아와 꽂힌다. 투둑. 투둑. 성준식이 만들어 뿌리는 화살이었다. 손바닥에서 화살이 튀어나와 호선을 그리며 날아와 결계에 꽂힌다. 물론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되어 사라지지만.

엄청 열받았나보네. 그제야 성준은 준식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3급 마법사인 준식은 마법 자체는 기본 이상은 했지만 잘 쓰지 않았다. 아주 열이 많이 받거나 신변이 위험해질 때나 겨우 발동하는 게 그의 마법이었다. 강해준이나 자신이 마법을 쓰는 만큼 마법이론에 강한 녀석이었으니 이론만 하고 살아왔다. 갑자기 의전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마법이론전공 교수들이 가지 말라며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졌던 게 생각났다. 하던 마법이론 석사도 때려치우고 의전원 공부를 했었으니까.

너 이 새끼 하여간 글러먹었어. 나 간다. 시발 새끼. 지 할 말 없으니까 상급 결계 치는 거 봐라. 개새끼.”

성준은 뒤돌아서 가버리는 준식을 잡지 못했다.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랬지. 학부 시절 성준식이 갑자기 생각났다. 마법이론은 어렵다. 실제 쓰는 사람은 이론으로 만들 의지나 학식이 부족했고, 이론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실전을 알 수가 없었다. 준식은 마력이 강하지 않은데도 의지와 학식을 가지고 실전까지 전부 꿰뚫을 수 있는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게 바로 그의 마력이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마력을 이해하는 힘. 그 힘을 말로 풀어내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려는 의지. 준식은 자신의 힘이 그런 걸 좋아했고, 평생 학자로 상아탑에서 살아가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전원에 가겠다고 했다. 갑자기. 교수는 돈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돈 핑계를 대는데 어쩌겠는가.

물론 그건 핑계였다. 자신 때문이었다. 학교에 있으면 자신을 따라다닐 수 없으니까. 곁에 오래 있지 못하니까. 마법사 전담 의사가 되어야 자신을 치료하고 전담한다는 명목으로 옆에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 성준은 그 사정을 너무 늦게야 알았다. 남의 마음을 읽는 동식이 준식이 의사 시험을 통과하고 마법사 전담 의사가 된 후에야 알려 줬으니까. 너 때문이야. 준식이 석사 포기하고 의전원 간 거.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거였는데. 한국에 마법사가 몇이나 된다고 그게 돈이 더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성준은 준식이 자신을 힘겹게 따라와 자꾸 옆에 앉아 있으려는 걸 몰랐다. 마법대학 신입생 시절 모든 술자리에 따라와 자기 옆에 앉아있던 성준식. 자신을 치료하며 곁에 따라다니기 위해서 평생 가고자 했던 길을 때려치우고 의전원에 갔던 성준식. 그 성준식이 이제는 자기의 연인이 되어서 결혼하자 말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더라? . 모르겠다. 성준은 눈을 감았다. 회상이 너무 많았다. 생각이 너무 길어. 잠이나 자자. 내일 생각하자. 늦은 밤, 성준은 깊게 잠이 들었다.

 

해가 뜬다. 아침이 왔다. 성준은 머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가야 한다. 준식이 열 받아서 자기를 까던지 말던지 하던 일은 해야 한다. 3차 세계대전 마력전에 대령으로 참전했던 성준은 그 전공을 앞세워 정계에 입문했다. 성준이 원하던 길이었다. 부모와 조부에게 조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그 외에 없었다. 마력으로는 강해준을 이길 수가 없다. 이미 권세와 금전이 많아, 자기가 어설프게 뛰어나봤자 의미가 없었다. 목표는 우선 국회위원이 되는 데 있었다.

조부와 아버지가 따르던 당에 입당했다. 오래도록 집권해 보수라고 불리는 당이었다. 지지자들은 거의 아버지와 조부 세대의 사람들이었다. 성준은 웃으면서 그들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와 조부를 대한다고 생각하면 쉬운 일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간단했다. 그들이 젊어 살았던 세상. 2차 대전 이후 급성장기로 돌아가는 것.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외벌이를 하며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집을 넓혀가는 것. 저축하고 근검절약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삶.

성준은 웃으며 그들을 대했지만 속으로는 괴로웠다. 자신은 여자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30대 젊은 마법사이자 대령이었던 자신을 보고 지지자들은 얼른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해 아이 낳아 살라 권했다. 자신은 그런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첫사랑은 그 빌어먹을 강해준이었고, 오랜 첫사랑이 끝나자 성준식이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은 골수까지 동성애자였다. 지지자들과 자신을 밀어주겠다 약속했던 위원들은 전부 동성애를 혐오했다. 아니, 남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지!

전쟁이 끝난 이후 세상은 더욱 양 극으로 쪼개졌다. 한쪽은 더욱 보수화되었고, 한쪽은 더욱 리버럴해졌다. 나이에 따라서, 자기가 살아온 궤적에 따라서 나누어졌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고, 노인과 중년들은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정과 과거의 가치를 중시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를 탐닉하기 시작한 거였다. 성준이 바라는 대로 하자면 성준식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조부나 아버지가 소개해주는 참한 여자 만나 결혼해 아이들 낳고 살아야 했다.

성준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언제나 자기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던 성준식. 자기 마음 하나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성준식. 빌어먹을 강해준을 찾으러 티베트로 떠났다가 돌아오던 길에 성준은 홧김에 준식에게 진심을 말하기를 요구했다. 갑갑했으니까. 시원해지고 싶었으니까. 그만 정리하고 싶었으니까. 뭐라도 확실하게 만들고 싶었으니까. 어떻게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사막 어딘가에서 둘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생각만 하면 온 몸이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 하지만 성준은 분명 자기가 원하는 걸 한길로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 생각해 보면 궤적은 그렇지 않았다. 1급 마법사가 한 번에 되지 못했고, 3차 대전 마력전에서는 강해준만큼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 이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 하니 성준식이 지랄을 한다. 어딘가 많이 어긋났다. 뭔가 이상하다.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팔이 많이 길거나 짧은 옷을 입고 있는 느낌. 그것도 양쪽 팔 길이가 완전히 다른. 자기 옷이 아닌데다가 그 옷도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

그러나 그 기분으로도 자신은 출근한다. 멀쩡한 얼굴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일한다. 소속되어 있는 연구기관에 출석해 실험하고, 이론을 만든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출한다. 퇴근해 보수 세력의 당에 출근한다. 인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눈도장을 찍고, 술을 마신다. 전후 복구 계획에 대해 논한다. 최대한 보수적인 방향의 말들을 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제안들을 부드럽게 물리친다. 여자를 사자는 제안도 사양하고 나오면 하루가 끝난다. 오늘이 어제와 다른 점은 성준식의 연락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성준은 늦은 밤, 술이 취한 채로 담배를 물고 집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길이지만 많은 존재들이 자기 옆을 떠도는 길을 걷는다. 연기를 길게 빼어 물며 걷는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Posted by 이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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